[박철범 변호사] (민사) 부정경쟁금지가처분 → 피고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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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철범 변호사입니다. 오늘은 [부정경쟁행위 금지 가처분] 재판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소송배경
‘부정경쟁행위 금지 가처분’이 뭘까요? 일반인들은 잘 들어보지 못한 절차일 겁니다. 그러나 기업을 운영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절차가 얼마나 무서운지 다들 잘 아십니다.
쉽게 설명 드릴게요. 민사재판은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로, “나에게 무엇(대부분은 돈)을 내 놓아라!”라는 청구를 하는 형식입니다. 대부분의 민사소송이 이런 형태입니다. 두 번째는 “너는 앞으로 무엇을 하지 말라!”라는 청구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더 강력한 요구일까요? 그건 피고의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일반 서민들의 입장에서야 “층간 소음을 내지 말라!”라는 판결보다, “층간 소음을 냈으니까 1000만원을 물어내라!”라는 판결이 더 무섭습니다. 실제로 돈이 나가니까요.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삼성전자에게 “돈 얼마를 물어내라” 라는 판결과, “앞으로 스마트폰을 만들지 말라”라는 판결 중에 어느 것이 더 무섭겠습니까? 기업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돈을 주고 끝내는 게 낫지, 아예 사업을 못하게 막는 판결이 나와 버리면, 회사가 그대로 문을 닫아야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바로 ‘금지가처분신청’입니다. 기업의 존망이 걸린 무서운 재판이지요.
그런데 “무엇을 하지 말라”라는 청구를 하려면 법적근거가 있어야할 겁니다. 그 근거로 대표적인 것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입니다. 줄여서 [부정경쟁방지법]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더 줄여서 [부경법]이라고도 합니다.
이 법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상도를 지키며 장사해라!”정도가 되겠습니다. 이 법에 의하면, 남이 힘들게 개발한 영업비밀이나 상표, 명성을 훔치는 행위는 처벌됩니다. 또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지 않는 모든 행위도 처벌되고, 민사적으로는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됩니다.
만약 누군가 이 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면, 피해자는 이 법을 근거로, 상대방이 더 이상 그런 행위를 하지 못하게 막아달라고 법원에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정경쟁행위 금지 가처분’입니다. 양쪽 회사 모두의 사활이 걸린 고난이도의 법정 싸움이지요. (이런 점에서 우리가 주위에서 자주 보는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 이런 흔한 가처분과는 성질이 다른 절차입니다.)
우리 의뢰인은 어떤 사연일까요? 의뢰인은 해당업계에서 매우 유명한 A회사에 재직하였다가, 최근에 독립하여 프리랜서가 되었습니다. 그 후 해당분야에서 자기만의 사업을 시작했고요. 그러자 화가 난 A회사가 의뢰인에게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네가 지금 영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은 우리 회사에서 얻은 지식과 영업비밀과 노하우를 이용해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니, 너는 앞으로 그 기술들과 비밀들을 이용해서 영업해서는 안 되고, 관련업체에 취업을 해서도 안 된다.”
만약 이 가처분 재판에서 의뢰인이 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업계에서 완전히 퇴출되는 겁니다. 더 이상 해당 분야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이기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의뢰인은 마음껏 사업을 할 수 있고, A회사는 그것을 보고만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막을 수가 없지요. 그야말로 한 쪽이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2. 구제절차
부정경쟁방지법은 매우 전문적이고 복잡합니다. 일반적인 민·형사 사건을 다루는 작은 규모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다룰만한 사안은 아닙니다. 아니나 다를까 A회사 역시, 변호사 업계에서 매우 유명한 굴지의 법무법인을 선임하였네요.
하지만 우리 의뢰인,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형로펌이든, 작은 법률사무소든, 결국 그 사건을 다루는 것은 ‘단 한명의 변호사’입니다. 그리고 소송의 승패는 그 변호사가 얼마나 열의를 가지고 사건에 매달리는가에 달린 것이지, 로펌의 규모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를 믿고 찾아와주신 의뢰인 분을 위해, 그리고 사업의 존망이 달린 의뢰인 분의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서, 저희 사무실에서는 이 부정경쟁 금지 가처분사건을 맡기로 결정하였습니다.
3. 재판결과
사건의 업종은 IT분야입니다. 내용 자체가 무척 어렵지요. 가처분을 신청한 상대방 법무법인은 자신들의 기술이 왜 독보적이고, 독창적·창의적인지 열심히 판사를 설득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방어를 해야 하는 저는, 상대방이 주장하는 내용들의 허점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아래 대법원 판례 취지에 따라, 상대방의 주장하는 기술이 ‘특정성’과 ‘비밀성’이 없다는 점 등을 적극 주장하였습니다.
“영업비밀 침해행위의 금지를 구하는 경우에는 법원의 심리와 상대방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없도록 그 비밀성을 잃지 않는 한도에서 가능한 한 영업비밀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여야 하고, 어느 정도로 영업비밀을 특정하여야 하는지는 영업비밀로 주장된 개별 정보의 내용과 성질, 관련 분야에서 공지된 정보의 내용, 영업비밀 침해행위의 구체적 태양과 금지청구의 내용, 영업비밀 보유자와 상대방 사이의 관계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3. 8. 22. 자 결정)
그러자 상대방은 불리하다 느꼈는지, 청구취지를 아예 새롭게 바꿔버렸습니다. 청구취지 변경이란, 지금까지의 재판을 무효로 하고, 완전히 새로운 재판을 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자기주장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공격을 하는 셈입니다. 물론 거기에 대해서도 저는 또 다시 반박을 하였고, 그렇게 상대방은 청구취지를 6번이나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은 어느 덧 1년 가까이 흘러, 상대방 법무법인은 이제 더 이상 청구취지를 바꿀 게 없다고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마지막 반박서면을 읽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0민사 재판부는, 아래와 같이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의뢰인 분. 그 동안 마음고생 참 많으셨습니다. 이제 발목을 잡힐 일 없이, 마음껏 사업을 진척시키셔서 앞으로 승승장구하시기만을 진심으로 기원해 드립니다.
*보너스 법률상식*
일반 민사재판에서는 재판을 거는 사람을 '원고', 그 상대방을 '피고'라고 하지요. 하지만 가처분재판에서는 재판을 거는 사람을 '채권자', 그 상대방을 '채무자'라고 한답니다. (실제로 채무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편 형사재판에서 재판을 받는 사람은 '피고인'이라고 합니다. 즉 민사재판을 당한 사람은 '피고'이고, 형사재판을 당한 사람은 '피고인'이지요. 여기서, 퀴즈 내드립니다. 그럼 형사재판을 건 사람은 뭐라고 부를까요? '원고'가 아니라 '원고인'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정답 말씀드리면요~ 바로,
'검사'입니다. 법원에 형사기소를 하는 사람은 검사니까요.
[박철범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