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범 변호사] (형사) 수사와 형사재판에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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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철범 변호사입니다. 오늘은 형사소송 사례를 하나 나눠볼까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이른바, ‘충북 제천시 목욕탕 화재사건’으로 잘 알려졌지요. 2017년 12월 21일. 충북 제천시의 9층짜리 스포츠센터 주차장에서 불이 났고, 이로 인해 목욕탕에 있던 29명이 사망, 36명이 부상했던 정말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5명이 형사 기소되었는데, 그 대법원 재판을 [변호사 박철범 법률사무소]가 맡게 되었습니다.
국민들에게 너무 잘 알려진 사건이고, 사건 관계자들의 개인정보 보호문제도 있어서 소송경과를 자세히 공개하지는 못함을 양해바랍니다. 다만 이 사건을 처리하면서 형사사건을 처리하는 변호사로 든 생각을 3가지 얘기해볼까 합니다. 이것은 불운하게 형사사건에 연루된 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조언이기도 합니다.
1. 변호인은 꼭 수사 받을 때부터 선임하세요.
미국 영화를 보면, 변호사가 배심원들 앞에서 현란한 말빨(?)로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미국의 법제도가 철저히 ‘공판중심주의’이기 때문입니다. 공판중심주의란 쉽게 말해, 모든 증명사항은 ‘법정’에서 공개되고 ‘법정’에서 탄핵되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그래서 변호사도 ‘법정’에서 ‘말’로 검사와 치열하게 다투는 것이 미국식 재판입니다.
이에 반해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는 ‘조서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의자는 재판이 열리기 전에 수사단계에서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게 되고, 여기 적힌 ‘글’이 나중에 재판에서 그대로 유죄의 증거가 되는 방식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법정에서 아무리 증인이 피고인은 무죄라고 ‘말’을 해도, 원칙적으로 판사는 조서에 적힌 ‘글’을 근거로 얼마든지 유죄의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형사재판에서 조서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무엇을 시사할까요? 수사단계에서 피의자가 했던 모든 진술이 나중에 그대로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있다면, 사실상 재판은 경찰서에 출석한 그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다면 변호사가 필요한 순간은 이때부터가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사 받을 때 좀처럼 변호인의 도움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도 경찰도 사람인데, 사정을 좀 봐주지 않을까’하는 기대 심리에 또는, ‘판사가 내 하소연을 잘 들어주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경찰이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고, 검찰은 기소를 하여 재판이 시작되면 그때야 부랴부랴 변호사를 알아봅니다. 재판도 뭔가 복잡하고 길게 걸릴 줄 알았는데, 검사는 판사에게 서류더미를 건네주고, 판사는 서류를 쓱 넘겨보더니, “증거조사 다 끝났으니 최후진술 하라”고 말합니다. 피고인이 당황하여 “저는 변호인을 선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국민참여재판? 그런 것도 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해보지만, 판사는 “재판이 이미 다 끝났고 판결 선고만 남았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 라고 호통 칩니다. 눈만 끔뻑이던 피고인은 그 자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어 끌려 나갑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만약 변호사가 수사단계에서부터 도와드릴 수 있었다면 어떻게 진술해야 하는지 조언을 해줄 수 있었을 것이고, 그 경우 유죄의 증거들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또한 형량의 경우도 양형조건을 제대로 검토하고 주장하여 훨씬 제대로 된 변호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아쉽습니다. 그러니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변호사는 꼭 수사 단계부터 선임해야 합니다.
2. 형사사건은 판사의 재량이 매우 큽니다.
민사사건은 요건사실 위주로 진행됩니다. 증명해야 할 사항을 증명하면 이기는 것이고, 증명하지 못하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사소송은 기계적이고 논리적입니다. 이에 반해 형사소송은 판사의 심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면 형량의 폭이 매우 넓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살인죄의 경우 법조문을 보면 형량이 ‘징역 5년 이상에서 사형까지’입니다. 만약 판사가 피고인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면 어디까지 선처해줄 수 있을까요? 최하치인 징역 5년을 선택하겠지요? 그러면 ‘작량감경’이라고 하여 판사가 여기서 한 번 더 절반으로 깎아줄 수 있습니다. 이제 2년 6월이 되겠지요? 3년 이하이기 때문에 이걸 집행유예해 줄 수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즉시 석방되는 것입니다. 똑같이 사람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사형을 당할 수도 있고 누구는 석방될 수도 있습니다. 폭이 참 넓습니다. 이것은 살인이라고 해도 모두 같은 살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이코패스의 무차별 살인이라면 형량이 높을 것이고, 수십 년 동안 학대를 당하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이라면 형량이 낮을 것입니다.
결국 형사소송에서 형량을 좌우하는 것은 “죄를 저질렀느냐, 안 저질렀느냐” 보다는, “어쩌다가 그 죄를 저지르게 되었느냐”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논리의 문제라기보다는, 감성과 감정의 문제이고, 스토리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변호사의 능력과 자세가 차이 납니다. 변호사도 참 다양합니다. “피고인도 불쌍하니 선처바랍니다” 라는 형식적인 변론만 하는 변호사도 있고, 양형사유를 면밀히 검토해서 어떻게든 재판부의 마음을 움직이는 변호사도 있습니다. 따라서 형사사건의 변호사를 선임할 때는 기본적으로 성실한 태도의 변호사, 사람의 마음을 잘 읽으며, 피고인의 삶을 호소력 있게 재판부에 잘 어필하여 판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믿음직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3. 전관예우를 기대하는 사람은 바가지를 씁니다.
‘판사나 검사 출신의 변호사를 쓰면 최대한 선처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위 ‘전관예우’를 기대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전관예우는 그야말로 옛말입니다. 법조계에서 사라진지 이미 오래됐습니다. 요새는 검사 출신의 변호사가 변호한다고 검사가 불기소 처분하거나, 판사 출신의 변호사가 변호한다고 판사가 무죄 판결을 하다가는 그야말로 해당 판검사가 구속되고 징역을 받는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는 것은 ‘전관예우는 아직도 존재한다’는 일반인들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먹고 사는 게 불법 사무장들입니다. 이들은 일반인들의 믿음을 이용하여 유리한 검찰처분이나 판결을 받아 줄 것처럼 의뢰인을 유혹합니다. 그러면서 엄청난 바가지를 씌웁니다. 의뢰인들은 변호사의 얼굴도 못 본 상태로 수임 계약을 하지만, 기소가 되어서야, 구속이 되어서야, 실형을 선고받고서야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전관예우는 없습니다. 아직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불법 사무장에게 속아 넘어가 바가지를 쓰기 십상입니다. 믿을만한 변호사를 찾길 원하신다면 직접 변호사를 만나세요. 좋은 변호사인지 여부는 얼굴을 맞대고 직접 그 변호사의 인상을 느껴보아야만 알 수 있습니다. 첫인상에서 성실함, 총명함,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면 그 변호사는 의뢰인을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재판 내내 연락조차 안 되는 전관출신 변호사보다, 그런 믿음직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게 형사사건에서는 가장 중요합니다.
[박철범 변호사]